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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일 서재

기관의 이름과 내 이름

제9회2부 49를 채우는 것2026-09-26약 5분

사회복지사가 만나는 사람은 대개 기관이 정해 줍니다.

협력 기관의 담당자, 지역의 네트워크, 지자체의 주무관, 후원처와 자원봉사자. 이름은 여럿이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고른 관계가 아니라 자리에 따라온 관계라는 것입니다.

자리가 바뀌면 그 관계도 대부분 정리됩니다. 담당이 바뀌면 연락이 끊기고, 기관을 옮기면 명단이 통째로 사라집니다.

그 바깥으로 나가는 데 저는 십 년이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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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가 반대였습니다

십 년 차를 넘긴 무렵부터였습니다. 제가 일하던 복지관과 직접 이어진 자리 바깥에서 사람을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돌아보면 이런 순서였습니다.

먼저서울시사회복지사협회 홍보위원회에서 활동했습니다
그러다어느 포럼에서 제 생각을 이야기했습니다. 사회복지사의 사명에 대한 것이었던 듯합니다
그러면서SNS에 생각과 이야기를 올렸습니다
그랬더니그 생각들이 교육이 되었습니다
2014년쯤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2016년쯤부터서울시복지재단 공유복지플랫폼에 칼럼을 연재했습니다

이 목록에서 눈여겨볼 것은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홍보가 없습니다. 저를 알리려고 한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순서가 반대였습니다. 생각을 이야기했더니 사람이 모였고, 사람이 모이니 자리가 생겼고, 자리가 생기니 글이 되었습니다.

앞 회에서 브랜딩은 홍보가 아니라 축적이라고 적었습니다. 제 경우가 그랬습니다. 쌓으려고 쌓은 것이 아니라, 하다 보니 쌓였습니다.

그러니 이 목록은 제 브랜드가 아닙니다. 브랜드가 생긴 뒤에 따라온 것들입니다. 무엇이 그것을 만들었는지는 뒤에서 따로 적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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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

그런데 이 이야기를 제 힘으로 된 것처럼 적으면 거짓말이 됩니다.

이 과정에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그 사람들을 통해 또 다른 사람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니 제 생각에 공감하는 분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 공감이 쌓여 다시 제 자산이 되었습니다.

브랜드는 혼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누군가 문을 열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을 인맥이라고 부르면 어긋납니다. 인맥은 쓰는 것이고 이것은 쌓이는 것입니다. 인맥은 필요할 때 꺼내지만, 이 관계들은 필요와 상관없이 이어져 있다가 어느 날 뜻밖의 자리를 열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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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의 이름은 늘 함께 갔습니다

여기서 흔히 나오는 물음이 있습니다. 밖에 나갈 때 기관 이름으로 가느냐, 내 이름으로 가느냐.

저는 그 물음을 세워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조직에 속한 사람입니다. 발표를 하든 글을 쓰든 제 이름 옆에는 늘 제가 속한 기관의 이름이 함께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제약으로 여기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다 못 한다는 것입니다.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다르게 봅니다. 기관 이름이 함께 붙으면 함부로 말할 수 없습니다. 확인하지 않은 것을 단정할 수 없고, 남을 깎는 방식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그 제약이 제 글을 정확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름 없이 썼다면 저는 더 세게 썼을 것이고, 아마 더 틀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방향은 한쪽으로만 흐르지 않습니다. 기관 이름이 제 글을 무겁게 하는 동안, 제 글도 기관의 이름을 어딘가에 놓아 두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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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역량은 어디서 왔는가

한 가지를 더 적어 두어야겠습니다. 이 대목을 빼면 앞의 이야기가 위험해집니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사회복지사도 있지만, 우리 대부분은 조직에서 일합니다. 그렇다면 조직에 대한 책임도 우리에게 있습니다.

브랜딩 이야기가 어긋나기 쉬운 자리가 여기입니다. 내 것을 세우다 보면 조직을 발판처럼 여기게 됩니다. 내가 쌓은 것은 내 것이고 조직은 그저 그 무대였다는 식으로요.

그런데 제가 사회복지사로서 겪은 일들은 조직의 자산이기도 합니다.

제가 만난 사례, 제가 맡았던 사업, 제가 저지른 실패. 그 어느 것도 저 혼자 겪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겪을 수 있게 자리를 준 것이 조직이었고, 그 옆에서 함께 고민한 사람들이 동료였습니다.

물론 스스로 공부한 것도 있습니다. 책을 읽고 배우며 쌓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조직에서의 경험이 거기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무엇을 읽을지 정한 것도 대개 현장에서 막혔던 자리였으니까요.

그러니 정확히 말하면 이렇습니다. 이것은 저만의 역량이 아닙니다. 제 동료들과 제가 속했던 조직의 도움이 그 안에 들어 있습니다.

브랜딩은 빚 위에 세워집니다. 그 빚을 잊지 않는 것이 조직에 대한 책임이고, 그것을 잊은 브랜드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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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갈라지는 자리가 있습니다

물론 언젠가 갈라집니다.

기관을 떠나면 기관 이름은 떨어집니다. 명함이 없어지고, 소개할 때 붙일 말이 사라집니다. 그때 남는 것이 진짜 내 것입니다. 그 이야기는 뒤에서 따로 하겠습니다.

지금 적어 두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내 이름은 기관 이름과 싸워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기관 이름을 걸고도 부끄럽지 않은 것을 여러 해 하다 보면, 어느새 그 옆에 내 이름이 남아 있습니다.

연재 중인 원고입니다. 책으로 묶는 과정에서 내용이 고쳐지거나 보태질 수 있습니다.

이 연재를 쓰는 사람이 낸 책들이 전재일 서재에 있습니다. 일곱 권은 무료로 읽으실 수 있고, 현장 실무서 두 권은 종이책으로도 나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