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두 회는 배운 것이었습니다. 이번에는 힘들었던 쪽입니다.
원칙은 그대로입니다. 사람은 적지 않습니다. 한 기관의 일도 아닙니다. 여러 곳에서 겪고 본 것을 한자리에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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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하나 정정하고 싶습니다.
직장에서 가장 힘든 것이 일의 양이라고 저는 오래 생각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감정이 소모되는 일이 힘들었습니다. 일은 많으면 늦게까지 하면 됩니다. 이쪽은 그런 방식으로 줄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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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인가
| 무엇이 오는가 | 받는 쪽에서 일어나는 일 |
|---|---|
| 이중 메시지 | 어느 쪽에 맞춰도 틀립니다 |
| 일관되지 않은 지시 | 어제 맞던 것이 오늘 틀립니다 |
| 그날의 감정에 따라 달라지는 처리 | 일이 아니라 사람의 상태를 살피게 됩니다 |
| 결정에서 빠지는 자리 | 결과만 받아 아래에 옮깁니다 |
| 「그 이야기는 조용히」 | 물을 수 없게 됩니다 |
중간에 선 자리에서도 결정에서 빠질 때가 있습니다. 정해진 것을 받아서 아래에 옮기는 일만 남습니다. 7회에서 중간에 선 사람의 일을 적었는데, 그 자리가 가장 얇아지는 때가 이런 때입니다.
제 나름의 옳은 소리가 「조용히 하라」는 말로 묻힌 적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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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줄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기준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기준이 있으면 사람은 일을 봅니다. 기준이 없으면 사람을 봅니다. 오늘 저 사람의 상태가 어떤지, 지금 말해도 되는지, 이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하는지.
그 살핌에 드는 것이 감정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디에도 실적으로 적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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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미 감정을 쓰고 있습니다
사회복지사에게 이 대목이 조금 더 무겁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용자 앞에서 이미 감정을 씁니다. 화가 난 분 앞에서 표정을 고르고, 힘든 이야기를 들으면서 무너지지 않게 버팁니다. 그것을 감정노동이라고 부릅니다. 힘들지만 이것은 일입니다. 우리가 하기로 한 일이고, 그렇게 인정받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밖에서 한 겹을 쓰고 들어와, 조직 안에서 또 한 겹을 씁니다.
그런데 바깥에 쓴 감정은 일이라고 불리는데 안에 쓴 감정은 아무도 일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냥 사회생활이라고 합니다.
두 겹째가 더 지치는 까닭이 거기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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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볼게
한 가지를 따로 적고 싶습니다.
「생각해 볼게.」
이 말로 이야기가 끝나는 때가 있습니다.
정말 숙고인 때가 있습니다. 당장 정하기 어려운 일이고 더 보아야 하는 일이면 그 말이 맞습니다. 저도 그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다만 제가 겪은 다수의 「생각해 볼게」는 그 뒤에 실행이 없었습니다.
그때 그 말은 제게 이렇게 들렸습니다. 나는 당신과 생각이 다르다, 더 거론하지 말라.
정말 그런 뜻이었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그렇게 들린 말은 그렇게 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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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말이 어려운 까닭은 그 뜻 때문이 아닙니다.
거절이라면 차라리 낫습니다. 거절은 끝이 있어서 다음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다른 길을 찾거나, 접거나, 다시 짜면 됩니다.
「생각해 볼게」는 끝을 주지 않습니다. 유예로 남습니다. 그래서 기다리게 됩니다. 한 주쯤 뒤에 다시 여쭐까 하다가, 채근하는 것으로 보일까 싶어 그만둡니다. 그러다 잊힙니다.
그 기다림이 가장 오래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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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무엇이 힘들었는가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왜 생기는지를 저는 오래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모질어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회에 그 이야기를 적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