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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일 서재

액자가 될 때

제23회3부 조직의 공기2026-10-16약 4분

21회에 적은 기관처럼, 새 리더가 오면서 오래 고여 있던 것이 풀리기도 합니다. 반대로 선한 뜻으로 온 관장이 굳은 조직문화 앞에서 지치기도 합니다. 22회에서 적은 방패가 그럴 때는 벽이 됩니다.

문제는 바꾸는 사람이 아니라, 바꾸는 순서와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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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은 한 사람이 만들지 않습니다

사명은 기관 전체가 만드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고, 한순간에 만들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랜 시간의 숙고와 경험이 함축되어 한 문장이 됩니다. 회의에서 오간 말, 실패한 사업, 잘된 사업, 어떤 이용자를 만나고 나서 바뀐 생각. 그런 것들이 오래 쌓이고 다듬어져 남은 것이 사명입니다.

그래서 사명은 문장이 아니라 과정입니다. 문장만 떼어 놓고 보면 어느 기관 것이나 비슷해 보입니다. 다른 것은 문장이 아니라 그 문장에 이르기까지 걸린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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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리에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새로 개관한 복지관에서였습니다. 사명도 비전도 아직 없었습니다. 그래서 구성원 모두가 워크숍으로 만들었습니다.

먼저 사명과 비전이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를 함께 짚었습니다. 그다음에 물었습니다. 이 복지관은 무엇을 위해 있어야 하는가. 그리고 우리가 있는 이곳이 어떤 지역인지를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문장은 그 뒤에 나왔습니다.

적어도 저에게 그 문장은 외울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 그 말이 들어갔는지를 그 자리에서 보았으니까요. 문장을 읽으면 그 문장이 나오기까지 오간 이야기가 함께 떠올랐습니다.

그 워크숍은 개관을 준비하던 때의 일입니다. 개관을 하고 일을 하다 보니 그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습니다. 우리가 만나야 할 사람들이 복지관에서 멀리 있었습니다. 각 동으로 나가는 실천은 그렇게 나중에 생겼습니다(19회).

돌아보면 문장을 정한 날 할 일이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개관한 뒤에야 보이는 것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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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에 없던 사람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그 과정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에게 사명은 어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 문장이 되었는지, 무엇을 빼고 무엇을 남겼는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모르면 해석이 갈립니다. 같은 문장을 두고 한 사람은 이렇게 읽고 다른 사람은 저렇게 읽습니다. 어느 쪽도 억지가 아닙니다. 문장은 원래 여러 갈래로 읽히고, 그 갈래를 좁혀 주던 것이 과정이었기 때문입니다.

과정에 없던 사람은 새로 온 관장만이 아닙니다. 올해 들어온 신입도 그렇고, 사명을 만들던 해에 다른 부서에 있던 사람도 그렇습니다. 기관에 오래 있었다고 그 과정 안에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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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자가 될 때

이제 액자 이야기입니다.

사명이 액자가 되는 것은 문장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대개 그 문장은 좋습니다. 과정이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과정이 끊어지는 때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 사람이 바뀔 때. 만든 사람들이 하나씩 떠나고 문장만 남습니다. 남은 사람은 그 문장을 받았지만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받지 못했습니다.

둘, 새 사명이 위에서 내려올 때. 법인이 바뀌거나 방향이 바뀌면서 새 문장이 옵니다. 이번에는 문장은 새것인데 과정이 아예 없습니다. 20회에서 적은 해빙 없는 변화가 사명에서 일어나면 이렇게 됩니다.

두 경우 모두 결과는 같습니다. 벽에는 문장이 걸려 있고, 오늘의 판단은 그 문장과 상관없이 내려집니다. 그것이 액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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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사명을 다시 만드는 일부터 떠올리기 쉽습니다. 저는 그보다 먼저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정을 다시 들려주는 일입니다.

새로 온 사람에게 문장을 외우게 하는 대신, 왜 이 문장이 되었는지를 이야기해 주는 것.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이 아직 남아 있을 때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새 관장에게도 필요합니다. 그도 그 과정에 없던 사람입니다. 21회에서 적었듯 먼저 배우고 그다음에 바꾸는 순서가, 사명 앞에서 특히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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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조직의 공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아직 남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사명이 액자로 걸려 있고, 오늘의 지시가 그 문장과 어긋날 때. 그 자리에 선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3부의 마지막 회에서 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연재 중인 원고입니다. 책으로 묶는 과정에서 내용이 고쳐지거나 보태질 수 있습니다.

이 연재를 쓰는 사람이 낸 책들이 전재일 서재에 있습니다. 일곱 권은 무료로 읽으실 수 있고, 현장 실무서 두 권은 종이책으로도 나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