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회 끝에서 물었습니다. 리더가 떠난 뒤에 남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전에 말을 하나 바로잡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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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26회에서 리더십이 나뉜 조직을 적었습니다. 그렇게 적어 놓고 보니 「그러니 모두가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로 읽힐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저는 그 말을 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 말은 듣기에는 좋은데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모두가 리더라면 리더십이라는 말은 아무것도 가리키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현장에서 그 말은 대개 일을 더 하라는 말로 내려옵니다.
그래서 저는 2부에서 이것을 다른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브랜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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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남습니까
남는 것은 조직이 내어 준 자리가 아닙니다. 사람들 안에 쌓여 있던 것입니다.
13회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이라고 적었던 그 사람들이 각자 전문가로서 갖춘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두 마디로 봅니다. 전문성과 책무성.
전문성은 15회에서 자기 일을 설명할 수 있는 데서 드러난다고 적었습니다. 책무성은 거기서 한 걸음 더 갑니다. 왜 그렇게 했는지를 기관 밖의 근거로 설명할 수 있는 것 — 22회에서 근거가 밖에 있다고 한 그 자리에 서는 일입니다.
풀면 이렇습니다.
| 풀면 | 무엇인가 |
|---|---|
| 상황을 분별하는 것 |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읽는 것 |
| 제대로 사정하는 것 | 짐작이 아니라 근거로 보는 것 |
| 당사자를 위한 실천 | 기관이 편한 쪽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필요한 쪽으로 하는 것 |
이것은 리더가 있어야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리더가 떠나도 함께 떠나지 않습니다.
앞 회의 임파워먼트가 빌려 쓴 것이었다면, 그래서 쉽게 사라졌을 것입니다. 이것은 다릅니다. 한 번에 생기지 않고 여러 해에 걸쳐 쌓인 것이라(8회), 쌓은 것은 거두어 갈 사람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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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리더십이라 부를 수 있습니까
솔직히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팀을 이끄는 것도 아니고 방향을 정하는 것도 아니니, 우리가 보통 리더십이라 부르는 것과는 다릅니다.
다만 한 가지 뜻에서는 그렇게 볼 수도 있겠습니다. 자기를 이끈다는 뜻입니다. 누가 보든 안 보든 같은 기준으로 일하고, 시키지 않아도 물어보고, 스스로 다음 할 일을 정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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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것이 팔로우십입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 보겠습니다.
5회에서 저는 팔로우십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과 다르다고 적었습니다. 그때는 리더를 사이에 두고 이야기했습니다. 지금은 다르게 봅니다.
팔로우십은 리더를 향한 것이 아니라 사명을 향한 것입니다.
앞 회에서 웬만하면 직원들의 의견이 반영되던 조직을 적었습니다. 그것이 왜 맞는 일인지를 이제 말할 수 있습니다.
조직에 사명이 있고 구성원이 그것을 자기 것으로 지니고 있다면, 담당자가 내놓는 의견은 취향이 아닙니다. 사명에 기대어 나온 판단입니다. 그러니 어느 정도는 반영되는 쪽으로 가야 합니다. 반영하지 않으려면 그 이유도 사명 쪽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사명은 비켜 가고 관장의 경험과 판단에 기대어 정해지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면 구성원이 내놓은 판단은 사명 앞에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경험 앞에서 심사받습니다. 그 심사는 근거를 댈 수 없습니다. 그저 익숙한 쪽이 이깁니다.
여기에 51의 몫이 있습니다. 무엇에 비추어 정할 것인가를 정하는 일입니다. 내 경험에 비출 것인가, 우리가 함께 선 사명에 비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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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바꾸지 않은 것
위가 바뀌어 기관의 공기가 달라질 때마다 제가 한 것이 있습니다.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이 복지관은 왜 있는가를 다시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이 기관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겨 왔는지. 그리고 사회복지사로서 제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새 방향이 내려올 때마다 저는 그 두 가지에 비추어 보았습니다.
22회에서 새 리더십 아래서도 구성원이 지키려는 것으로 그동안 일해 온 긍지와 사회복지사로서의 가치관을 적었습니다. 제게는 이 두 가지가 그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조심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리더의 경험이나 의견을 「나와 다른 것」으로 세우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세우는 순간 이야기는 누구 말이 맞느냐를 다투는 것이 됩니다. 그 다툼에서 이기는 쪽은 대개 정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같은 자리로 돌아가 물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의 본질이 무엇인가. 거기서 의견을 냈습니다.
편했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 말을 비난으로 받아들이는 때가 있었고, 저를 경계하는 때도 있었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들린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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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되, 선은 말합니다
분명히 해 두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저는 무조건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새로 온 관장에게도 하고 싶은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관철되기를 바라고, 직원들이 함께 가 주기를 바랄 것입니다. 저는 그 마음을 이상하게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따랐습니다. 다만 사회복지관으로서 지켜야 할 선에 대해서는 이야기했습니다.
이 둘은 함께 갈 수 있습니다. 오히려 일은 하지 않으면서 말만 하면 그 말은 힘을 잃습니다. 평하기만 하는 사람의 말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리더가 바뀌어도 빼앗기지 않은 것입니다. 바뀐 것은 그 말을 어디까지 할 수 있느냐였지, 무엇에 비추어 말하느냐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따르는 것은 관장이 아니라 이 기관이 있는 이유입니다. 23회에서 사명은 문장이 아니라 과정이라고 적었습니다. 그 과정 안에 서 있는 사람이 자기 자리에서 해야 할 마땅한 것 — 그것이 사회복지조직에서의 팔로우십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49는 리더십이 자리를 열어 줄 때만 쓰이는 몫이 아닙니다. 리더가 바뀌어도, 리더가 없어도 그 몫은 그대로 있습니다.
다만 23회에 적었듯 사명은 액자가 되기도 하고, 새 문장이 위에서 내려오기도 합니다. 그때 기댈 것은 22회에서 적은, 기관 밖에 있는 근거입니다. 이 기관의 사명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끝내 말해 주는 것은 우리가 선서한 것이고, 그것은 관장도 법인도 바꾸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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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 말이 어디로 갈 수 있는지도 적어 두어야겠습니다.
이렇게 적으면 모든 것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말이 될 수 있습니다. 각자 전문성을 갖추면 된다고 하면, 조직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스스로 하는 학습 옆에 조직이 주는 학습을 함께 놓았고(12회), 맡겨 놓은 서투름은 조직이 견뎌 주어야 한다고 적었습니다(19회). 쌓을 시간을 주지 않는 곳에서 쌓으라고 말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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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물음은 이렇게 남습니다.
이것을 사람에게만 맡기지 않고 구조로 만들 수 있습니까. 어디까지 만들 수 있고, 어디부터는 만들 수 없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