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회 끝에서 물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무엇으로 서 있어야 합니까.
여는 글에 같은 물음을 다른 말로 적어 두었습니다.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의 소명과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일하는 조직에서, 리더십과 팔로우십은 어떠해야 할까요.
이 회는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을 찾아보는 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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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서의 문장이 묻어나는 조직
사회복지사들이 모인 조직이라면, 선서에 나오는 문장들이 조직에 묻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로만 인권을 이야기해서는 안 됩니다. 당사자의 임파워먼트도, 강점관점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말들을 배웠고, 이 말들로 사례를 씁니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가 더 있습니다. 그 말들은 당사자에게 향한 만큼 조직 안에도 향해야 합니다.
16회에서 임파워먼트를 두고 이 이야기를 한 번 했습니다. 임파워먼트만이 아닙니다.
| 당사자에게는 | 조직 안에서는 |
|---|---|
| 강점을 먼저 보라고 배웁니다 | 동료를 볼 때도 그렇게 합니까 |
| 자기결정을 존중합니다 | 직원이 낸 의견은 반영됩니까 |
| 한 번의 모습으로 사람을 규정하지 않습니다 | 한 번 굳은 평가가 사람을 따라다니지는 않습니까 |
| 이미 있는 힘을 되찾게 합니다 | 일하는 사람의 힘은 되찾아집니까 |
오른쪽 칸이 비어 있으면 왼쪽 칸은 일할 때만 쓰는 말이 됩니다. 말뿐인 인권이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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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이유를 증명하는가
그래서 늘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왜 있는가. 그리고 우리의 실천이 그 이유를 증명하고 있는가.
다만 조직이기에 이 물음이 뒤로 밀리는 때가 있습니다. 조직의 가치와 관점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예산이 있고 평가가 있고 위탁 기간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매일 소리를 냅니다.
그것만으로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 조직의 가치가 한 사람에게서만 나오고 한 사람에게만 맞춰지면 문제가 생깁니다. 무엇이 이 기관에 맞는지를 한 사람이 정하는 순간, 존재의 이유를 묻는 일은 그 사람의 뜻을 묻는 일로 바뀝니다(2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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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곳의 공통점
저는 세 곳의 사회복지관에서 일했습니다. 법인도 달랐고 관장도 달랐고 공기도 달랐습니다.
그래도 사회복지사들이 모인 조직으로서의 공통점을 하나 찾으라면, 저는 윤리였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말을 조금 더 정확히 해야겠습니다. 세 곳 모두 늘 윤리적이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조직이 있을까 싶습니다.
제가 본 공통점은 이것입니다. 윤리적 딜레마를 느낄 수 있었다.
옳지 않은 쪽으로 기울 때, 그것을 불편해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조직의 요구와 당사자의 이익이 부딪힐 때, 그것을 부딪힘으로 느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늘 이기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딜레마는 큰 자리에서만 오지 않았습니다. 내 가치와 기관의 가치 사이에서도 오고, 사례회의에서도, 직원회의에서도 옵니다. 결재 서류에 도장을 찍는 순간에도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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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 지원 서류 한 장
반찬 지원 서비스 서류를 결재할 때가 그랬습니다.
자원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 안에서 몇 가구에 무엇을 얼마나 드릴지가 서류에 적혀 올라옵니다. 숫자는 맞습니다. 서류에도 틀린 데가 없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걸립니다. 정해진 한계 안에서만 지원하는 것이 맞는가.
서비스를 편하게 내보내려면 같은 반찬을 같은 날 같은 양으로 나누는 것이 편합니다. 그런데 받는 사람은 같지 않습니다. 씹는 것이 불편한 분도 있고, 혼자 드시는 분도 있고, 아이와 함께 사는 집도 있습니다. 편리하게 하려는 결정이 개별화를 밀어냅니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이 다시 「반찬 지원 대상」이라는 하나로 묶입니다.
11회에서 신입 때 아이들을 만나며 개별화를 더 보게 되었다고 적었습니다. 결재하는 자리에서 다시 걸린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아이들이 아니라 반찬을 받는 분들 앞에서였습니다.
앞 회에서는 후원을 받을 때 생기는 집단화를 적었습니다. 나눠 드릴 때도 같은 일이 생깁니다.
왜 그렇게 됩니까. 어쩔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원이 이것밖에 없고, 시간이 없고, 사회복지사가 적습니다. 저는 이것을 핑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결재하는 자리라고 이 고민이 비켜 가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자리라서 또렷했습니다.
다만 하나는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때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사회복지사들은 고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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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끼지 못하는 조직
거꾸로 생각해 보면 이렇게 됩니다.
딜레마를 느끼지 못하는 조직은 둘 중 하나를 이미 내려놓은 조직입니다.
사람은 고민하는데 조직은 느끼지 못하는 일도 있습니다. 그 고민이 결재 서류 위로 올라오지 못할 때입니다. 서류에는 몇 가구에 얼마가 적히고, 걸렸던 것은 적히지 않습니다.
제가 본 바로는, 먼저 내려놓게 되는 쪽은 대개 당사자 쪽이었습니다. 조직의 요구는 매일 소리를 냅니다. 당사자의 권리는 누가 대신 말해 주지 않으면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목적이 달성되었으니 괜찮다」가 그 자리입니다(28회). 괜찮다고 여기는 순간 딜레마가 사라집니다. 사라진 것은 문제가 아니라 문제를 느끼는 감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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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떠해야 하는가
소명과 정체성이라는 말은 거창하게 들립니다. 그런데 조직 안에서 그것이 드러나는 모습은 소박합니다. 불편해할 줄 아는 것.
2부에서 적은 사회복지사의 브랜드도 결국 여기서 드러납니다. 선서한 것을 실제로 사는 사람은 그것이 어긋날 때 불편해합니다(13회).
여는 글의 물음에 이 회가 내놓을 수 있는 대답은 이렇습니다.
51의 몫은 그 불편함이 말이 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딜레마를 꺼낸 사람이 번거로운 사람이 되지 않게. 그 말이 회의에서 한 번은 다루어지게.
49의 몫은 그 불편함을 놓지 않는 것입니다. 익숙해지지 않는 것. 따르더라도 선은 말하는 것(27회).
둘 중 하나만 있어서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불편해하는 사람이 있어도 말할 자리가 없으면 그 사람은 지칩니다. 말할 자리가 있어도 불편해하는 사람이 없으면 그 자리는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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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처음의 숫자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51과 49.